한국의 바윗길을 가다(81) -선인봉 측면길
한국산악회 장승필 회장 “추억과 전통을 넘어 내일로 향하는 바윗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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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률 기자] 도봉산 입구 포돌이 광장에서 만난 한국산악회 장승필(71) 회장의 얼굴은 다소 찌푸린 날씨와는 달리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장 회장과는 이번이 세 번째의 만남이었다. 8월, 무더웠던 여름에 설악산 흑범길과 석주길을 취재등반하기 위해 장 회장 외 등반팀이 설악C지구에서 야영을 하면서 모기의 공격을 피하고 주변의 소음에 시달리다 새벽에 간신히 잠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비가 내리는 바람에 잠도 설치고 등반도 하지 못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날 등반팀은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에도 비선대 산장까지 올라 적벽을 바라보며 끝까지 등반기회를 노렸다.
9월15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는 한국산악회 창립 69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이날 장 회장은 인사말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악회의 수장으로서 창립 70주년을 목전에 둔 한국산악회의 미래를 행사에 참가한 회원들과 내빈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한국산악회의 가장 큰 창립취지는 국토균형을 포함한 산악문화의 창달입니다. 독도와 이어도 등 유명산에 대한 생태조사와 같은 학술적 활동으로 회가 시작된 거죠. 또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산악인들을 배출하는 기술등반 역시 회의 주축을 이루는 가치입니다. 저는 이 같은 한국산악회의 취지와 가치를 중요시하며 회원들과 함께 내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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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70년의 전통이 있는 산악회가 건재하고 맏형으로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든든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산악회는 창립 70주년을 회가 발전하는 좋은 기회로 삼아 대대적인 기념사업들을 준비하고 있다.
“창립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사업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인 송경태와 함께 하는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포함한 5개의 알파인스타일 해외원정대가 준비중이며 독도표석을 재건립하기 위한 위원회와 대대적인 학술세미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 언제든지 해외원정을 갈 수 있는 상비군을 훈련시키고 청소년 안전교육도 강화할 것입니다”
장 회장은 한국산악회 창립 70주년과 관련된 행사들을 숨 가쁠 정도로 설명했다. 창립 70주년을 맞아 산악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어 어깨가 무거울 텐데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천진하다싶을 정도로 맑고 밝았다. 선한 학자풍의 이미지와는 달리 장 회장은 의외로 낙천적이고 담대한 추진력이 돋보이는 산악인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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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장 회장과 함께 등반할 등반팀은 유순준 클라이머와 성연수 클라이머. 두 사람은 ‘한국산악회 산악연수원 등산학교(이하 한산등산학교)’ 출신으로 각각 23기와 29기를 수료했다. 유 클라이머는 이날 한산등산학교 33기의 2주차 교육에 지원차 나왔다가 취재팀에 합류했다.
유 클라이머는 ‘대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거짓도 숨김도 없는 순수한 행위’라는 사실에 매료되어 암벽등반에 입문하여 현재 인수와 선인의 고난이도 루트를 선등하는 실력 있는 클라이머다. 검도경력이 10년이고 내년도에 있을 한국산악회 창립 70주년기념 원정등반 히말라야6000미터급 미답봉 등반을 준비중이다.
성연수 클라이머는 이제 암벽등반 6년차의 중견 클라이머로 선등을 설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내년 6월에는 미국 요세미티 등반을 목표로 맹훈련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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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봉 남측을 향해 이동을 하는데 장 회장의 발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땀을 흘리고 쫓아가야 할 지경이었다. “보통 포돌이 광장을 출발해서 선인봉 벽까지 1시간이면 도착합니다. 이제는 너무 빨리 걷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다고 해서 속도를 늦추려고 해요”
“장 회장님은 산악연수원장 재임시 강사들과 자주 야영을 하면서 항상 솔선수범하시고 강사들이나 학생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반영해서 후배들의 귀감을 사신 분입니다. 사비를 털어 강사들과 같이 해외원정도 다니실 정도로 등반에 대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이 놀랍구요. 지금도 15kg전후 무게의 배낭을 메고 등반을 할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유지하고 계신데 동계 빙벽등반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힘찬 청년의 모습입니다”
“한국산악회 회원들 특히 한산등산학교 출신들은 모두 무거운 장비를 메고 걷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서 걷는 데에도 자신이 있다”는 성 클라이머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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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등반할 바윗길은 선인봉 측면길이다. 선인봉의 남측면에 위치한 바윗길로 크랙과 침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다섯 마디에 거리가 148미터에 이르는 비교적 장거리 루트라고 할 수 있다. 최고 난이도는 5.8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역시 바위는 붙어봐야 안다.
특히 선인봉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5.8~5.9 난이도의 루트에서 당황했던 기억들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표범길 셋째 마디, 난이도 5.9의 트레버스 등반은 얼마나 살이 떨리는지, 넷째 마디 출발후 첫 볼트를 걸기까지 약 10미터에 이르는 구간은 볼트 하나 없는데다가 첫 볼트에 퀵드로를 걸려면 반드시 한 동작이 더 필요하게끔 설계하여 선등자가 느끼는 난이도는 몇 배나 더 어렵게 여겨진다.
이날 아침, 선인봉 남측면에는 등산학교에 참가한 학생들로 적지 아니 붐비고 있었다. 측면길 바로 오른쪽 허리길에 약 20여명, 왼쪽 남측길에도 십수 명의 클라이머가 등반하는 것은 물론 취재팀이 등반할 측면길에도 여러 명의 클라이머들이 등반을 준비중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클라이머들의 저변이 크게 늘어난 것 같아 반갑기도 하지만 인원을 조금씩 나누어 여러 루트로 등반하는 것이 여러 등반팀이 등반을 할 수 있는 배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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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길에 매가 자주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만약에 매가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등반로를 바꾸어야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평소 자연보호에 대해서 많은 염려를 하고 있는 장 회장 다운 말이었다.
그는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는 지역에는 작은 팻말이라도 달아서 가능한 사람들의 진입을 자제하는 것이 올바른 자연보호가 아닌가 싶어요. 또 그런 일은 우리 한국산악회에서 해야 할 일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취재팀은 “측면길을 등반하되 등반로상에 매가 사는 것이 확인되면 바로 탈출하기로 타협을 보고 등반을 강행하기로 했다.
선인봉 남측오버행 우측, 측면길과 허리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배낭을 내려놓고 성 클라이머가 준비해온 과일주스를 한잔 마시니 갈증이 씻은 듯 사라진다. 선인봉 측면길은 1938년 김정태, 엄흥섭 등이 개척한 바윗길로, 이들과 이시이가 힘을 합쳐 한 해 전에 개척된 선인A길이나 남측길(1940년 주형렬, 채숙 등 개척)과 함께 선인봉의 고전루트에 속한다. 77년 전에 개척된 바윗길이며 자그마치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선인봉을 지켜오며 수 많은 클라이머들과 호흡을 함께 해온 전통 있는 바윗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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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선등을 맡은 유 클라이머의 헬멧에는 "때론 자연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겐 가혹할 수 있다"라는 경구가 쓰여져 있다. “바람과 비와 눈 그리고 혹독한 날씨까지 견디고 버티려면 여러 가지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측면길 첫째 마디는 왼쪽으로 보이는 침니를 빠져나가 뜀바위 직전까지 등반하는 거리 약 25미터의 등반루트다. 그러나 취재팀은 좌측길을 버리고 우측의 크랙을 타고 직상하는 루트를 택했다. 기존의 길을 버리고 변형루트를 선택한 등반팀에게 장 회장의 한 마디가 귀에 꽂힌다. “어려운 길을 선택했네. 고행길이 시작됐어”
산악계의 대선배인 장승필 회장이 빌레이를 봐주는 가운데 오늘의 선등자인 유 클라이머가 드디어 첫째 마디를 출발한다. 우측의 크랙에 설치된 캠에 자일을 확보하고 계속 크랙을 뜯으며 올라 크럭스 지점에서 다시 캠에 확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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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디딤이 아주 좋지 않은 지점에서 살짝 미끄러지는가 싶었지만 이내 강인한 팔의 근력을 이용하여 턱을 넘어서는데 성공했다. 첫째 마디 우측루트는 크럭스 지점에서 발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팔에 체중이 많이 실리게 되어 난이도가 높다.
턱을 완전히 넘어선 유 클라이머. 답답하고 힘을 쓰기도 여의치 않은 좁은 크랙을 뚫고 직상하여 환하게 트여진 암벽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로는 거침없는 등반이 이루어진다. 좌측으로 크랙을 잡고 이동하여 직상한 다음 첫째 마디 확보지점을 지나쳐 곧바로 레이백 자세로 날개를 잡고 둘째 마디 확보지점까지 등반을 완료했다.
이번에는 장 회장의 등반순서. 걱정했던 출발지점 크랙구간을 거뜬히 통과한 그가 거침없이 올라 날개구간의 크랙을 뜯으며 등반하는 모습이 무척 가볍고 경쾌하게 보인다. 뿐만이 아니다. 등반속도 또한 이날 등반한 인원들 중 가장 빠른 편이라 할만했다. "등반을 늦게 하면 근력이 떨어져서 등반속도가 빠르다"고 에둘러 표현하지만 그것도 힘과 체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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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마디까지 한 번에 등반을 마친 장 회장이 다른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빌레이 준비를 하고 말번인 성연수 클라이머의 빌레이를 본다. "성연수 씨가 빌레이를 잘 보라고 신신당부했는데 허허~" 아마도 그런 멘트에는 약간의 텐션을 달라는 의미가 약간은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장 회장의 안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이윽고 오늘의 말번 등반자인 성 클라이머의 모습이 나타난다. 어느새 선글라스를 끼고 여유있게 등반하는 폼이 영낙없는 모델의 자태다. 한국산악회 정회원이라는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성 클라이머. 붉은색셔츠와 배낭을 멘 그의 오렌지색 헬멧 정가운데에는 한국산악회의 로고가 빛난다. 침착하게 날개까지 진출한 그가 이번에는 레이백 자세를 잡고 다시 한 번 멋진 포즈를 취해준다. 멋진 미소를 바라보자니 오늘 사진촬영에는 아무런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 클라이머가 이번에는 멍텅구리 크랙을 등반하여 대형 침니로 등반하는 셋째 마디를 출발한다. 그런데 스타트 지점, 난이도 5.8이 무색하게 홀드가 미끄럽고 발디딤이 좋지 않다. 차분하게 캠에 확보를 한 유 클라이머, 걱정과는 달리 능숙하게 선등을 해낸다. 그의 등반 모습을 보니 손아귀와 팔의 근력이 엄청나다. 한번 홀드를 잡으면 결코 놓치는 일이 없이 등반하는 모습에서 속임수 없는 정직함과 우직한 뚝심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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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시장기가 돌아 시간을 살펴보니 12시 40분경. 포돌이 광장에서 8시에 출발한 것치고는 등반이 다소 늦은 셈인데 아마도 생각이상으로 등반이 까다롭고 어려웠던 첫째 마디를 등반하면서 시간이 지체된 것 같다. 셋째 마디, 고정 확보장치 없는 지점에서 간단한 간식을 들고 가기로 했다. 성 클라이머가 정성껏 준비해온 알밤과 곶감이 아주 맛나다. 확보지점에서 틈틈이 먹는 간식은 시장기도 없애주거니와 등반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장 회장은 서울대명예교수이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토목공학계의 원로다. 세계교량학회 부회장(2005~2013)을 역임했고 최근에는 교량 및 건축구조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학회인 '세계 교량 및 건축구조학회(IABSE)'의 명예회원이 되기도 했다. 그는 과연 언제부터 등반을 시작했을까? 갑자기 궁금증이 몰려온다.
“중학교 2학년 때 저기 만장봉을 올랐어요. 선등이었지. 중학교 1학년 때는 인수봉을 선등으로 올랐고, 몸이 참 가벼웠었고 신체가 강하니까 가능했던 거였지.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등반은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사람의 운명이라는 어차피 극복의 대상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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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필 회장은 경기중학교 1학년 때 암벽에 입문했다. 1955년, 단기로는 4288년으로 지금도 간혹 ‘쌍팔년도’라고 부르는 그해에 인수봉을 선등으로 오르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당시 인수봉에는 인수A와 인수B, 후면 그리고 선인봉에는 선인A와 선인B 그리고 남측길, 측면길 정도의 바윗길만이 있을 때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하인리히 하러의 저서 ‘하얀 거미’를 읽고 목표를 아이거 북벽 등반으로 바꾸었지만 당시에 그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경기고등학교에 다닐 때 역시 산악부원으로, 1961년 서울대 공대 토목과 입학 후에는 공과대학 산악부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등반할 정도로 치열했던 그의 목표는 한때 난공불락의 성처럼 여겨졌던 아이거 북벽까지 향했으나 당시의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했던 것은 아니었다.
장 회장의 도전정신은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결코 꺾이지 않았다. 2013년 여름에는 나이 70에 아이거를 등반하는 놀랄만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한국산악회의 후배들과 함께 아이거 북벽 원정을 떠나 결국 서릉을 통해 아이거 정상 등정에 성공하고야 만다. 마치 어린 시절의 꿈을 찾아 결국 트로이목마의 유적을 발견한 역사학자 토마스만과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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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넷째 마디를 출발한다. 이제 긴 침니등반에서 벗어나 허리길과 만나는 지점까지 돌파하는 구간이다. 장 회장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직상하는 방법으로 단번에 침니를 올라갔는데 선등자의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등반팀은 좌측의 크랙을 타고 확보지점까지 등반하기로 했다.
흔들리는 덧장바위를 조심하면서 크랙을 뜯으며 침니를 벗어나니 그곳이 바로 남측길 셋째 마디 완료지점으로 바위를 건너뛰어 넷째 마디로 출발하는 지점이었다. 남측길을 등반하는 클라이머들로 확보점이 복잡한 가운데에서도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하고 하늘로 올려다 보이는 다섯째 마디가 다소 위압적이다.
“등반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자일파트너에요. 언제든 함께 등반 할 수 있는 자일 파트너가 있다면 언제고 재미있게 등반 할 수 있으니까. 나도 자일 파트너가 있었지. 그 친구는 안타깝게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세상을 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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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회장이 오래전 함께 등반했던 자일 파트너를 잠시 회상하는 사이 유순준 클라이머가 다소 까다로운 출발지점을 벗어나 멋진 자세로 다섯째 마디 등반을 시작한다. 크랙을 뜯으며 힘차게 등반을 하는 모습은 마치 추억과 함께 내일로 향하는 차세대 산악인의 앞날처럼 빛난다. 70여년도 전, 선배들이 개척한 바윗길을 오늘의 클라이머가 오른다. 선인봉 측면길은 추억과 전통을 넘어 내일로 향하는 그런 바윗길이 아닐까.
등반팀은 다섯째 마디 등반을 마치고 하강하여 남측길을 통해 한산등산학교 33기 교육생 23 명의 등반팀과 만나기로 한 만장봉 아래 약속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날 한산등산학교 33기 23명의 교육생들은 연수원에서 새벽 5시 반에 기상하여 정기범 연수원장, 조남복 부원장 등 한산등산학교 강사들과 선인봉 낭만길을 등반했다.
“오늘 정말 재미있는 등반을 했다”며 자평하는 장승필 회장, “선인봉 측면길이 마치 ‘17세 처녀를 연상시키듯 아기자기한 길이었다”고 말하는 유 클라이머 그리고 “바위를 오르는 순간 많은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위험, 두려움과 싸우다보니 차츰 느껴지는 흥분과 희열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는 성연수 클라이머, 그들의 얼굴은 훌륭한 선배산악인들의 후광을 업고 희망차게 달려가는 한국산악회의 내일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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